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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영화 남한산성으로 보는 삼전도의 굴욕

by 역사는극치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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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은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등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뭉쳐 삼전도의 굴욕이 된 병자호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입니다. 청룡 영화상에서 각본상을 받았으며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 대종상 영화제에서 촬영상과 조명상, 음악상을 받았을 만큼 대단히 잘 만들어진 영화 입니다. 오늘은 남한산성의 배경이 되었던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정보

개요 : 드라마 / 한국 / 139분
개봉 : 2017.10.03
평점 : 7.4 (다음) / 8.17 (네이버)
관객수 : 3,849,129 명

간단 영화 스토리

영화 남한산성의 포스터로 주연배우들의 사진이며 왼쪽부터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배우의 사진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포스터


주연배우 :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하는다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식)이 치열하게 공방을 버리고 그 사이 인조(박해일)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이다.

후금. 그리고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먼저 설명 하기에 앞서 그 원인이기도 하자 앞 사건인 정묘호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후금의 태종은 1627년 3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그러자 인조를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은 그들의 위세에 눌려 싸움 한번 하지 못하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후금의 태종은 조선에 서신을 보내어 자신이 조선을 침략한 일곱 가지 이유를 밝혔는데, 그중 하나가 조선이 차지한 만주를 내놓을 것. 명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 3만 명을 보낼 것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최명길 등이 강화 회담에 나서 형제 맹약을 맺고 서로 침략하지 않으며 세공 및 몇 가지 조건을 허락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는데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 이다.

청나라, 삼전도의 굴욕. 병자호란

1636년 후금의 태종은 본인을 황제라 일컫고 국호를 청으로 고친다. 그러면서 형제관계의 약속을 깨고 군신관계를 강요하였으며, 명나라와 동등하게 청나라를 대우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조정의 신하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잠깐의 굴욕을 참고 나라와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명길을 옹호하는 주화파와 명나라의 대의를 지키고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야 한다는 김상헌이 이끄는 척화파 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주화파 보단 척화파의 세력이 더 높았으므로 청나라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는 후금이란 이름으로 조선을 침략해왔던 나라에게 이번엔 청이란 이름으로 침략을 받게 되는 빌미를 마련한다.
1639년 겨울 압록강이 얼자 청의 태종은 10만 군사들을 거느리고 조선에 쳐들어왔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 가려 했지만 청나라군에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조선군은 청나라군에게 패하였고, 점점 고립되어 갔다. 심지어 강화도로 피난 갔던 왕자들 또한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결국 인조는 주화파 최명일의 의견에 따라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아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 병자호란 이다.
이때 인조는 삼배구고두례를 하는데 이것은 당시 청나라 황제를 대면할 때 취하던 예법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3번 조아리려 이것을 3회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치욕적인 삼전도의 굴욕이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영화는 상당히 사실에 맞춰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과장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거기에 연기라면 내놓으라 하는 이병헌과 김윤석, 그리고 박해일 까지. 뻔한 역사 영화가 아니다. 지루할 듯 하지만 그들의 연기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잘 표현한 영화이다. 실제 역사 속도 그렇고 영화 속에서도 주화파와 척사파가 고립되어 있는 동안 대책 없이 이어지는 논쟁만을 펼친다. 오늘날 이런 대책 없는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치욕적이고 아픈 역사는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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