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로 보는 스포츠 역사 이야기

영화 <퍼펙트게임>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투수의 이야기

by 역사는극치 2022. 7. 4.
반응형

2022년 7월 3일 LG 트윈스 외야수 박용택 선수의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그의 백넘버 33번은 영구결번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기아 타이거즈의 상징인 선동열과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인 최동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퍼펙트게임>의 두 주인공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두 선수는 각 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을 받았을 만큼 팀과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대한민국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투수들입니다.

 

부산이 낳은 최고의 투수 무쇠팔 '최동원'

1958년 5월 24일 부산 출신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최동원 선수는 2011년 9월 14일 향년 53세에 아직은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다했습니다.

1983년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합니다. 이미 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투구를 보여줬기에 부산 팬들은 최동원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유명한 일화를 살펴보자면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청룡기 4강에서 선린상고를 상대로 11K 완봉승, 군산상고를 상대로 20K 승리투수를 하며 혼자의 힘으로 팀의 우승을 견인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시절엔 1978년 로마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 1981년 대륙간컵 국제 야구대회 등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자 지금 류현진 선수가 뛰고 있는 MLB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뒤에도 5년 동안 국내에서만 활동해야 대체복무로 인정되는 병역법 때문에 해외에 나갈 수 없어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1983년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하게 됩니다.

용틀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역동적인 투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 공격적인 투구를 했습니다. 그렇기에 통산 고의사구는 15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무쇠팔이란 별명답게 284.2이닝을 던졌으며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2위 기록인 223K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록은 2021년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경신할 때까지 37 시즌이나 깨지지 않는 기록이었습니다. 

8 시즌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선수 생활 동안 통산 248게임 방어율 2.46, 103승 74패 26세이브를 거두는 전설이 됩니다.

최동원 선수의 가장 위대한 기록 중 하나는 1984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이자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한국시리즈 4승이라 기록입니다. 때문에 이 해 롯데 자이언츠는 우승을 하였습니다. 최동원 선수는 시즌 MVP와 다승왕, 탈삼진왕, 골든글러브까지 받으며 입단 1년 만에 부산과 대한민국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완벽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이렇게 영원한 롯데의 전설로 남을 것 같은 최동원은 1988년 선수들을 위해 창립한 선수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삼성으로 강제 트레이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는 그가 운명을 다한 2011년에 롯데 자이언츠 최초의 영구결번(11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무등산 폭격기와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

1963년 1월 10일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에서 태어난 선동열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최고의 후원자는 아버지였는데 공터에 조명시설까지 설치하여 그의 연습을 도와줬다고 합니다. 

광주일고 시절 선동열은 투수보다는 타자로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3학년 때 투수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선수로 바뀌었습니다. 1980년 첫 전국 대회인 대통령 배에서 선발 투수 겸 5번 타자로 출전하여 준결승전에서 완봉승. 결승전에는 구원 등판해 승리를 지켰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같은 해인 봉황대기에서는 경기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고 1981년 제1회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미국, 대만, 일본 전의 거듭되는 호투로 방어율 0.31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이 됩니다. 

1985년 지금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고 입단 첫 해 평균자책점 1위(1.70), 7승 4패 8세이브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합니다.

2년 차 징크스를 무시하듯 평균자책점 0.99, 262이닝, 24승 6패 6세이브, 214K, 19 완투와 8 완봉승을 거두며 프로야구에 무등산 폭격기의 등장을 알립니다. 그 후 1987년 해태 타이거즈의 2년 연속 우승을 견인하였고 이듬 해인 1988년엔 전후기 통합리그로 치러진 단일 시즌 첫 해 우승에 힘을 보탭니다.

그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합니다.

개인 기록으로는 리그 MVP 3회, 골든글러브 6회, 트리플 크라운(방어율, 다승, 승률) 4회, 방어율왕 8회, 다승왕 4회 등 역대급 기록과 타이틀을 보유 중입니다.

선동열은 국내 프로야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34세의 나이로 일본 NPB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여 세이브 1위를 기록하는 등 나고야의 태양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선동열 역시 기아 타이거즈 최초의 영구결번(18번)이 되었습니다. 

 

전설 VS 전설

비슷한 시절을 함께 보낸 최동원과 선동열이기에 그 둘의 맞대결은 세기의 관심사였습니다. 영남지역과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투수였습니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라이벌 관계 또한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 둘의 승부는 선발 등판 3번 중 1승 1무 1패로 동률 일 만큼 우위를 가리기 어려웠습니다. 

선동열은 자신보다 선배인 최동원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더 노력했고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얘기했을 만큼 존경하는 선배로도 인식하였습니다. 최동원 역시 인정하고 존중하는 후배였습니다. 이 둘은 라이벌이었지만 서로를 인정 하기도 한 사이였습니다.

영화 '퍼펙트게임'의 배경이 된 1987년 5월 16일 이 둘의 마지막 대결은 사직구장에서 치러졌고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데 무려 연장 15회까지 갔지만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이날 최동원의 투구 수는 209개, 선동열은 232개로 한 경기 최다 투구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모두 완투를 했을 만큼 감독들 또한 이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영구결번의 의미

모든 사람들은 어떤 한 분야에 최고인 사람들을 통칭하여 전문가 혹은 장인이라고도 부릅니다. 모든 사람들은 최고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프로세계의 운동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프로 선수들이 자신의 등 뒤에 새긴 번호와 이름은 그들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알릴 수도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 선수들이 몇 개월 혹은 몇 년, 몇십 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합니다. 어떤 선수들은 팬들에게 기억이 남지 않은 선수이기도 하고 영원히 기억되는 선수 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 선수들 뿐 아니라 업종을 불문하고 모두들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기억을 공식적으로 이 번호, 혹은 업적은 당신만을 위해 남겨놓겠다는 그 선수 혹은 그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최고의 선물은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을 한 사람들에게만 돌아갈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영화 정보

개요 : 드라마 / 한국 / 127분

개봉 : 2011.12.21

평점 : 8.94

관객수 : 150만 명

주연배우 : 조승우, 양동근, 최정원, 마동석, 조진웅

감독 : 박희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