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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영화 <킹메이커>의 실존 인물인 엄창록의 이야기

by 역사는극치 202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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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영화 <킹메이커>가 개봉했습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메가폰을 잡았던 변성현 감독의 작품이며 설경구, 이선균이 주연을 맡은 정치 영화입니다. 영화는 마타도어의 귀재, 선거판의 여우라고 불렸던 인물인 엄창록이라는 정치인을 모티브 하여 제작하였습니다.  그는 현대 정치판에서도 엄청난 임팩트를 주었던 인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지역감정을 처음으로 이용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2009년 작고하신 전 김대중 대통령의 파트너였다고도 알려진 그는 누구였는지 영화 속 역사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사 이야기

엄창록 그는 누구인가?

1987년부터 대선에서 전략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보다 훨씬 앞서 선거제도가 발달한 유럽과 미국의 선거운동 전략을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고 정책적으로 대안을 개발하여 국민들에게 후보자들에 더욱 어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전인 1960년대 가장 뛰어난 책사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엄창록입니다. 선거판의 여우 혹은 마타도어(흑백선전)의 귀재라고 불렸을 만큼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치 않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엄창록은 함경북도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의 심리전 담당 하사관으로 복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요제프 괴벨스와 마오쩌둥의 심리전술을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휴전이 된 후 강원도 인제에서 살게 됩니다, 1961년 5월 인제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로 출마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시작됩니다.

김대중과 엄창록의 만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선거는 1954년 전남 목포 국회의원 선거였습니다. 무소속 후보로 나섰지만 5위로 낙선하였고 이후 전형적인 진보 정치인으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후 민주당에 가입하게 되었고 1960년 강원도 인제 총선에 나가지만 역시 낙선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의 의지를 높이 인정한 민주당은 그를 대변인으로 임명합니다. 1961년 그곳에서 엄창록을 만나게 된 김대중은 1963년 처음 선거를 시작하였던 목포로 돌아가 재선에 성공합니다. 이 선거에서 엄창록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떻게 보면 웃기고 유치한 수법들이 모두 사실입니다. 푼 돈을 넣은 봉투를 여당 이름으로 돌려 유권자들에게 안 좋은 인식을 준다던지, 여당 후보 이름으로 고무신을 돌렸다가 다음 날 빼앗아가기 등 기발한 작전으로 당시 군사정권에 맞서는 김대중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이 후 1971년 당내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김대중의 참모인 엄창록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밑바닥 표, 대의원들을 훑는 저인망 전략을 세워 결국 김대중이 대선후보로 선출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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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생포 작전

군사정권의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는 이러한 엄창록의 활약이 못마땅했음이 분명했습니다. 박정희 입장에서는 김영삼 보다 김대중이 더욱 붙기 싫은 상대였기도 했습니다. 김영삼은 거대한 세력이 뒷받침하고 있었지만 김대중은 밑바닥부터 치고 오는 돌풍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김대중의 책사 엄창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박정희 정권은 '여우 생포 작전'을 실행합니다. 1971년 1월 음력 설날 김대중의 자택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경찰은 김대중 선거캠프의 참모진을 의심하였고 이런 소행을 한 사람으로 엄창록을 지목하게 됩니다. 그는 이 사건 후 사라지게 되었고 이 일로 김대중과 엄창록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인연이 됩니다.

지역감정의 시작

대한민국은 분단의 아픔을 지니고 있던 나라였기 때문에 지역감정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하지만 엄창록이 사라지고 선거 막판 이상한 기류가 생겨납니다. 부산과 대구 시내에 대량의 전단물이 살포됩니다. '호남인이여 단결하라'라는 전단물인 것입니다. 이후 공화당 후보는 경상권에 내려와서 경상도 정권을 지키자는 연설을 하게 됩니다.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사람인 박정희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지역감정의 프레임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엄창록이 사라지고 이러한 프레임을 통해 박정희 정권에게 유리하도록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엄창록은 속리산에 납치되어 있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계획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구의 계획이든 간에 지역감정의 시작이 된 것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1963년 선호도를 보면 영남지역과 호남지역의 차이가 거의 없지만 1971년의 대선 결과를 보면 명확하게 호남과 영남으로 구분되게 됩니다. 이 선거 이후 호남은 개발에서 제외되었고 부산과 대구는 중공업이 들어서고 광역시들이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발전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사망

이후 많은 정치인들이 그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그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그가 1988년 호흡기 질환으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역사가 주는 이야기와 느낀 점

세계 역사를 보면 각 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겐 최고의 책략가들이 존재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서부터 5년마다 펼쳐지는 대통령 선거를 하는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승부를 하기 위해 그들의 존재는 필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붙여지는 최고의 찬사는 바로 킹메이커가 아닐까 합니다. 국민들은 권력의 정점에 선 리더를 기억하지만 리더들은 그들의 조력자를 더욱 기억하기도 합니다. 비록 엄창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계략에 의해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지만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지내왔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 <킹메이커>를 보기 전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엄창록이란 인물에 대해 알고 본다면 영화가 주는 재미와 이야기를 더욱 집중해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의 영화 속 역사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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