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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영화 <미인도>로 보는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이야기

by 역사는극치 202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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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초 넷플릭스에서 2008년 개봉한 <미인도>가 스트리밍을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중 신윤복과 김홍도가 활동했던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하였습니다. 신윤복은 남자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섬세하고 여성미가 느껴지고 김홍도와 다르게 그의 초상화가 없기 때문에 여성이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이 영화화되었습니다. 오늘은 <미인도>의 배경이 된 두 명의 인물인 김홍도와 신윤복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 이야기

정조가 아꼈던 조선 시대 유일무일의 화가 김홍도

무관 출신의 아버지를 두었던 김홍도는 1745년 태어났습니다. 이후 도화서 화원이 되었고 1781년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인 어진화사로 임명되어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때부터 정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지도를 그려오라는 기밀 임무를 맡을 정도로 정조가 믿고 아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조선시대의 화풍에 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청나라를 통해 알게 된 서양 화법을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김홍도가 풍속도만 그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국가의 중요한 작품을 대부분 그렸습니다. 그의 걸작으로 대웅전의 <삼세여래후불탱화>를 손꼽기도 합니다. 그가 풍속화를 그렸던 이유는 당시 조선의 임금인 정조와 관련이 깊다고 보는 관점이 많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 서민들의 삶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정치 개혁을 하기 위함이라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김홍도는 단순한 풍속화가라기 보단 국가를 위해 그림을 그렸던 최고의 천재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조선 시대 풍속화의 정점을 만든 화가 신윤복

도화서 화원인 아버지 신한평의 영향이었는지 신윤복 역시 대를 이어 화원이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정조 때 활동하였기 때문에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한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홍도와 달리 다채로운 표현을 통해 조선 시대 풍속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은 선이 강하고 남성적인 면이 강한 반면 신윤복의 그림은 선이 가늘고 여성적인 면이 강합니다. 또한 김홍도는 주제를 돋보이기 위해 배경을 생략하였습니다. 반대로 신윤복은 치밀한 주변 묘사를 통해 주제를 부각했습니다. 채색 역시 많이 비교가 됩니다. 김홍도는 절제된 색을 사용하고 임금의 색인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윤복은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두 사람이 가장 큰 차이점은 그림을 그린 대상입니다. 김홍도는 서민층의 풍속을 다룬 것에 반해 신윤복은 양반층의 풍류나 남녀 간의 연애, 향략적인 생활을 주로 그렸습니다.

영화에서도 이 두 사람의 많은 작품들이 묘사됩니다. 특히 주인공인 신윤복의 그림이 많이 나오고 이 그림들이 어떻게 그려졌을까 라는 상상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그의 대표작인 '단오풍정'을 시작으로 짝짓기 하는 개를 보고 웃는 과부와 몸종을 그린 '이부탐춘', 달빛 아래 두 남녀가 몰래 정을 나누는 '월화정인', 기녀가 외출을 한 틈에 기녀의 몸종과 양반이 애정행각을 나눈 모습을 그린 '기방무사' 등 남녀의 애정행각을 다룬 에로틱한 표현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성리학 이념이 자리 잡고 있던 조선시대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양반들의 위선과 불륜을 대담하게 표현하고 풍자하면서 본질적이고 숨기기만 했던 면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또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을 작품에 등장시킵니다. 더욱이 조선 시대 가장 천한 신분에 속했던 기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과감한 화폭은 오늘날 조선시대 사회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과 느낀 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고 한번쯤은 보았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은 현재도 연구되고 있으며 당시 조선 시대를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 쓰이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사진기를 통해 쉽게 인물과 배경 등을 담아낼 수 있지만 당시는 그림과 글로 모든 것을 담아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이유입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같은 시대에 살아가면서 서로를 라이벌로 인정하고 각자의 그림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더욱 이 둘의 그림이 발전할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에로틱하게 영화를 표현하였지만 신윤복의 그림을 표현하기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 두 천재화가에 대해 알고 본다면 영화를 이해하고 더욱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오늘 <미인도>의 역사 배경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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