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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영화 <헌트>로 보는 1980년 대한민국의 역사 이야기

by 역사는극치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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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 영화 <헌트>가 넷플릭스에 개봉되었습니다. 이정재는 감독이자 주연배우를 맡았고 그의 영혼의 파트너인 정우성 배우 역시 주연을 맡았습니다. 2022년 개봉하였으며 많은 시상식에서 그의 연출력을 인정받아 많은 수상을 하였습니다. 영화는 대한민국의 제5공화국 시절인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으며 사실에 근거하여 각색하였습니다. 오늘은 헌트에 등장하는 역사 배경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사 이야기

이웅평 귀순

영화는 카메오로 출연한 배우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다른 영화에서는 거의 주연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카메오로 등장하여 영화의 재미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영화 중반에 북한 전투기를 타고 남한으로 귀순한 공군 장교가 나옵니다. 북한 공군 장교는 황정민 배우가 연기하였고 이는 실제 북한 공군 장교인 이웅평 씨의 실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1983년 2월 25일 대한민국에는 공습경보가 발령됩니다. 북한군 비행기가 대한민국 상공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으로 귀순을 결심한 이웅평 씨였습니다. 그는 북한의 군인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유로움이 있었지만 북한의 경제 사정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한의 방송을 몰래 청취하면서 남한의 경제사정을 알게 되었고 결국 탈북을 선택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미얀마 버마 암살 폭파 사건(아웅산 테러)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장식하는 사건입니다. 일정 부분 각색된 부분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전두환이 버마(현재의 미얀마)의 수도 랭군(현재의 양곤)의 아웅산 묘소를 방문했을 때 북한 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폭파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과 북한은 제3세계 외교전이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습니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국가들과의 수교를 통해 상대방 국가를 고립시키려고 하였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엄청난 공방전을 펼쳤을 때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자신의 나라와 수교를 맺기 위해 노력했던 나라 중 하나였던 미얀마는 사회주의 이념을 지녔기 때문에 북한과 우호적인 외교 자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고 대한민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많은 의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확실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이 동남아 순방 일정에 미얀마를 첫 번째 순방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1983년 10월 8일 미얀마에 도착한 전두환은 첫날 일정을 마치고 10월 9일 미얀마의 독립 운동가이자 국부인 <아웅 산>이라는 사람의 묘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공식 일정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이었고 많은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시간에 맞춰 전두환 대통령은 준비를 끝냈지만 대통령과 함께 가기로 한 외무장관이 아직 도착을 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합니다. 외무장관의 승용차가 운행 도중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전두환은 공식 일정의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됩니다. 한편 대통령의 도착 시간에 맞춰 아웅 산 묘소에는 행사 준비로 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장대는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애국가 1절이 끝났을 때를 테러의 시작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식 일정의 시간이 다가왔고 멀리서 귀빈 차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타 있는 승용차는 아녔습니다. 대통령과 비슷한 용모의 비서실장이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자 경호처장의 시범연주 지시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 소리에 폭탄이 터지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이 테러로 대한민국의 장관과 언론사의 사진기자 17명이 사망하였고 미안먀의 관계자 7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북한의 테러리스트는 총 3명으로 이 중 한 명은 체포 과정에서 사살되었고 2명은 체포되었습니다. 후에 2명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사실상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이지만 미국의 적극적인 만류로 인해 보복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이 보복적 행위를 취할 시 더 큰 전쟁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은 세계에서 완전히 고립되며 외교에서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역사 이야기를 끝맺으며

영화는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이 다른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대통령의 독재를 볼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남자와 사회 구조가 다른 나라에 잠입하여 자신의 나라를 위해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남자의 대립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을 보호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당장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역사에서도 영화에서도 결국 대통령 암살 작전은 실패로 끝납니다.  만약 당시 그곳에서 작전이 성공으로 끝났다면 대한민국은 좀 더 빨리 민주화를 얻을 수 있었지 아니면 다시 한번 같은 민족이 서로 총을 겨누는 전쟁이 시작되었을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오늘 영화 <헌트>의 역사 배경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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