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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역학 3부작의 마지막편 영화 명당으로 보는 풍수리지

by 역사는극치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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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피터필름에서 역학 3부작인 관상(2013년), 궁합(2018년)에 이어 내놓은 마지막 이야기인 영화 명당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영화 명당의 포스터로 주연배우인 조승우의 모습
영화 명당의 포스터

 

영화 정보

개요 : 드라마 / 한국 / 126분

개봉 : 2018. 09. 19

평점 : 6.7 (다음)  /  7.75 (네이버)

관객수 : 2,086,418 명

 

 

간단 영화 스토리

주연 : 조승우, 지성, 김성균, 문채원, 유재명, 이원근, 백윤식

감독 : 박희곤

 

세도정치로 인해 장동 김씨는 나라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시기입니다.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은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더욱이 본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막다가 가족을 잃게 됩니다. 13년이 지난 후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이 박재상에게 장동 김씨를 몰라낼 것을 제안하고, 그 뜻을 함께 하기로 합니다. 흥선과 박재상은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서로의 뜻이 달랐기에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극을 버리는 이야기입니다.

 

 

산과 땅, 물의 흐름을 읽어 길흉화복을 연결시킨다. 

풍수지리란 땅의 성격을 파악하여 좋은 터전을 찾는 사상으로 삼국시대 때 도입되어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며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 정도전이 제시하였던 수도였던 개경과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말한 조선 시대의 수도인 한양을 풍수지리 적 관점에서 본다면 완벽한 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픈 역사이야기이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선의 주요 요지에 쇠말뚝을 박았놓았다는 것 또한 풍수지리설에 입각되어 나온 이야기입니다.

 

왕을 2명이나 배출한 터, 그곳은 어디인가?

 

야사에 따르면 흥선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파락호 흉내를 내고 안동 김씨의 가랑이 사이를 기었다는 이야기. 상가집의 개라는 모욕적인 별명까지 얻으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야사일뿐 실제 흥선군은 고위관직을 지내며 조정에서도 모범 종친으로 칭송받는 어르신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망을 품고 있던 흥선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서 벗어나 왕족으로써 입지를 다지길 원했습니다. 

세도정치란 쉽게 풀어 왕권 중심이 아닌 조정 신하 중심으로 권력이 흘러가는 것을 얘기하는데 그 대표적으로 안동 김씨이다. 영화에선 김좌근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장동(안동)김씨의 대표로 나옵니다.

풍수지리설을 믿는 흥선은 단숨에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명당에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옮겨 2대 천자가 배출할 터를 찾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풍수가는 당시 가야사라는 절이 있는 곳을 지목하였고 묘를 쓰기 위해 흥선군은 거금을 주지에게 주고 절을 불태웠다는 설과 영의정 김좌근에게 뇌물을 주어 묘 쓰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설이 있지만 절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첫 번째 가설이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남연군의 묘는 지금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에 있습니다. 

결국 흥선은 가야사를 불태우고 남연군의 묘를 옮깁니다. 그 후 7년 후 명복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조선 26대 왕 고종입니다.  고종의 아들. 흥선의 손자 역시 27대 왕인 순종입니다.

 

 

오페르트 도굴 사건

흥선이 이 터에 위치한 남연군의 묘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독일에서 온 상인 오페르트는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하였지만 생각보다 단단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실패로 이어지고 근처에 있는 농민들에게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흥선이 쇄국 정치를 정치로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영화는 흥선의 실제 이야기와 거기에 가상의 인물인 박재상을 넣어 역사의 배경에 접근하는 과정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합니다. 배우들의 라인업도 좋았고 연기력 역시 좋은 영화입니다. 

흥선은 결국 명당을 차지하였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세도정치를 끝내고 흥선군에서 흥선대원군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쇄국 정치와 왕권 강화 정책, 민생안정을 통해 쇠락한 국가를 일으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차지한 명당은 딱 2명의 왕만을 배출하고 끝났습니다.

1910년 조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근대사회로의 진입은 백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었습니다.

영화 명당은 결말대로 고조가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딱 그뿐 이었습니다.

풍수지리는 앞서 언급한 듯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지금도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고 많은 사람들이 따지기도 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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