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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영화 봉오동 전투로 보는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

by 역사는극치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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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영화 봉오동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봉오동 전투는 다들 역사시간 혹은 넷플릭스, 영화관을 통해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에 벌어진 독립군과 일본군의 대규모 전투로써 멋진 첫 승리를 이끌어 냅니다. 그 중심에 하늘을 나는 장군 홍범도가 있었으니 오늘은 홍범도 장군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포스터로 독립군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모습
영화 봉오동 전투의 포스터

 

영화 정보

개요 : 액션 / 한국 / 135분

개봉 : 2019. 08. 07

평점 : 8.8 (다음) / 9.07 (네이버)

관객수 :  4,787,579 명

 

영화 간단 스토리

주연배우 :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특별출연-최민식

감독 : 원신연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무장항쟁이 활발해집니다. 그 중심에는 군대가 아닌 독립군이 있었고 항일대도를 휘두르며 적을 무찌르는 해철(유해진)과 독립군의 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불리해 지자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하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쳐 일본군을 당황시킵니다. 

1960년 6월 역사의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독립군의 첫 승리이자 모두의 승리. 봉오동 전투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는 우리 민족의 독립군의 무장 항쟁이 활발해졌습니다. 이에 일본은 1920년 5월부터 독립군 토벌 작전을 추진합니다. 하지만 이에 맞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를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였고 봉오동에 집결하여 강력한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습니다.

1920년 6월 4일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 순찰소대를 습격해 타격을 입혔고 다음날 1개 소대 병력이 두만강을 건너 이들을 추격해오자,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은 삼둔지에서 일본군 추력대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힙니다.

이 핑계로 일본군은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 공격에 나섰고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 부대는 봉오동의 산지에 매복하였다가 일본군 추격대대를 삼면에서 포위하여 궤멸시켰습니다.

이 전투는 만주지역에서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으며 첫 승리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독립군의 사기는 크게 높아졌으며, 곧 1920년 독립전쟁이 활발히 전개되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무장항일투쟁의 선봉장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과 우리 민족 모두의 승리입니다. 이 승리를 위해 우리는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백두산 호랑이, 9척 장신, 날으는 홍범도 장군입니다.

홍범도 장군은 1868년 8월 27일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동네 아낙네들로부터 젖동냥을 통해 자랐습니다. 9살에 아버지마저 여읜 홍범도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15살에 입대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의 부정부패를 가만히 볼 수만은 없었던 그는 병영을 탈출하고 금강산 신계사라는 절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신계사에서의 생활은 홍범도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었는데 이곳에서 제대로 된 교육 한번 받지 못했던 홍범도는 글을 깨치고 역사에 대해 알았으며 반일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 환속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총을 잘 쏴 포수 생활을 하게 됩니다.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직후 일본은 총포기화류 일제 단속법을 발령했는데 이때 홍범도 장군은 짐승이 아닌 왜놈들을 사냥하겠다는 마음으로 의병활동에 참전하게 됩니다. 포수 시절 갈고닦았던 사격술로 일본과의 전투에서 크고 작은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홍범도 장군 역시 1911년 연해주로 망명하였고 이곳에서 권업회를 조직해 항일무장투쟁으로 이어나갔습니다.

1920년 봉오동 일대에서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해서 결성한 대한북로군독부 예하 북로 제1군 사령부장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6월 봉오동 전투를 승리. 그로부터 4개월 뒤 청산리 전투에서 참여해 활약하였습니다.

 

 

100년 만의 장군의 귀환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을 추진하였습니다. 2020년까지는 유해를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서한까지 보내어 추진하였는데 2020년은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유해 봉환을 공식 발표하였고 코로나 19 확산으로 1년이 미뤄져 2021년 8월 14일에 특사단을 파견하여 제76주년 광복절인 8월 15일의 늦은 밤 마침내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한민국에 도착하였습니다. 

봉환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하고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 하였습니다.

지난해 KBS는 홍봉도 장군을 그리는 드라마 제작을 기획한다고도 밝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영화는 홍범도라는 실존 인물과 모든 독립군의 활약상이라고 보이는 가상의 인물들을 넣어 봉오동 전투의 위대한 승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네티즌 평점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흥행을 한 작품이며 출연진들의 연기력 또한 월등하기에 충분히 시간을 투자하여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장군을 자세히 그린 영화가 아닌 독립군을 중점으로 두고 있는 영화입니다. 홍범도 장군이 선봉장으로서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 활약한 건 맞지만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독립군의 이름 하나하나를 대신하여 보여주기에 더욱 뜻깊은 영화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꼭 보시길 추전 드리며 2023년에 방영을 계획하고 있는 홍범도 장군을 그린 드라마 역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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