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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아픔의 역사 '6.25 전쟁일' 참전용사를 기리며 영화 인천상륙작전

by 역사는극치 202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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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남침한 전쟁입니다. 오늘은 6.25 참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영화 중 '인천 상륙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화 '인천 상륙작전' 은 2016년 5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인기상과 뉴 라이징상을 받았고 2017년 37회 황금촬영상 에서 

신인남우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이뤄진 우리나라에서 왜 인천이 작전지역으로 결정되었는지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전제조건은 뭐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포스터로 가운데에는 리암 니슨 그 왼쪽엔 이범수 오른쪽엔 이정재가 서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메인 포스터

 

영화 정보

 

개요 : 전쟁 / 한국 / 110분

개봉 : 2016. 07. 27

평점 : 5.6 (다음) / 8.55 (네이버)

관객수 : 7,051,237 명

 

 

간단 영화 스토리

 

주연배우 :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 진세연

감독 : 이재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에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모두의 반대에서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에 꼭 이 작전을 성공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었고 이 작전이 바로 X-RAY 작전입니다.

이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투입됩니다. 

역사를 바꾼 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인천을 반대했었다.

 

처음부터 인천이 계획의 선정지는 아니였습니다. 참모들이 처음 생각한 곳은 군산시였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끊임없이 인천 상륙을 주장하였지만 미 합동참모본부와 해군본부 역시 이 인천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는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대한민국 2위의 수치인만큼 높을 때는 9m, 낮을 때는 7m라 함대가 진입하기도 빠져나가기도 어렵고, 썰물이 되면 수백 미터의 갯벌 때문에 도보 및 차량통행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여 미 8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먼저 반격을 해서 올라갔을 때 군산에서 상륙함으로써 양측이 서로 협조된 공격을 하는 것이 작전 계획인 100-A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미 8군이 반격을 할 수 있는 요건은커녕 방어선을 지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기에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암호명 'CHROMITE'라는 작전계획 100-B 인 인천 상륙작전이 실행된 것입니다.

이 외에도 100-C 군산 상륙 계획, 100-D 주문진 상륙 계획이 있었지만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100-D 계획은 기본적으로 인천으로 상륙하고 인천 상륙작전이 원활하지 않을 때 국군 2개 사단을 별도 TF로 구성해서 주문진 지역을 타격하는 작전으로 후에 장사리 전투의 모티브가 됩니다. 장사리 전투에 관한 내용은 제 블로그에도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영화로 보는 역사 이야기[현충일특집 2탄-장사리:잊혀진영웅들]

◈◈◈◈◈◈◈ 영화 정보 개요 : 전쟁 / 한국 / 104분 개봉 : 2019. 09. 25 평점 : 7.3 (다음) / 8.41(네이버) 관객수 : 1,140,876 명 간단 영화 스토리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양동작전인 또 하나의 전투. 이명.

jeontaeng.tistory.com

 

왜 맥아더는 인천을 주장했을까?

그렇다면 맥아더 장군은 왜 인천을 주장했을까요? 맥아더 장군은 적 후방의 보급로를 끊어버리고 완전 단절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장소가 인천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은 이에 몇 가지 이유를 들며 계획의 실행 승인을 받게 됩니다. 

기본 작전계획이였던 군산시의 경우 상륙하기는 양호하나 상륙해도 북한군의 보급선을 절단하지도, 적 병역을 포위하지도 못한다는 결론이 난지 오래였습니다. 평양 이남의 남포도 생각하였으나 이 지역은 북한의 수도 바로 아래이기 때문에 방어가 가장 튼튼한 데다가 중요한 원산-서울-낙동강 보급선을 막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천에 적의 병력 배치가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였습니다. 1,000명 이내만 인천을 지키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또한 내륙으로 진입하기에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아 북한군의 병참로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미군은 이미 1945년 9월 8일에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인천에 제24군단이 입성하였는데 이는 인천 상륙작전 3배가 많은 인원이 들어온 날이기도 합니다. 미군은 사실상 이때부터 인천의 조수간만의 차와 시간, 암초등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기에 이 작전은 반듯이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나의 작전을 성공하기 위한 숭고한 희생  '양동 작전 '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이틀 전부터 인천~군산, 삼척, 마량도(함경남도) 등 주요 해안에서 대규모 폭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교란 및 기만작전 이였습니다. 이를 통해 적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인천 상륙에 방해가 될만한 주요 시설을 파괴했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9월 15일 미 해군 대위와 켈로부대는 팔미도의 등대를 사수하여 등대에 불을 켜서 인천 상륙작전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인천 상륙작전 하루 전 장사리 전투가 실행되어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희생이 이뤄졌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영화는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벌어진 의견 충돌과 그 작전을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숭고한 희생을 보여줍니다. 개봉 후 6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매번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영화입니다.

인천 상륙작전은 제2차 대전에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미드웨이 해전의 비중을 가질 만큼의 작전입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수세에 몰리던 남한은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대표 아빠 액션배우 리암 니슨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는 신의 한 수였으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 이정재가 출연하여 더욱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6월 25일 오늘은 다른 영화보다는 역사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인천 상륙작전'을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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