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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희대와 과학자이자 기술자 장영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by 역사는극치 202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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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번 포스팅했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 이어 또 다른 위대한 업적을 그린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의 두 천재가 만나 우리만의 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발명품들. 오늘은 장영실은 누구였으며, 장영실과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든 발명품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천문의 포스터이며 세종대왕(한석규)와 장영실(최민식)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장면
영화 '천문'의 메인 포스터

 

영화 정보

 

개요 : 드라마 / 한국 / 132분

개봉 : 2019. 12. 26

평점 : 8.3 (다음) / 8.8 (네이버)

관객수 : 2,000,648 명

 

 

영화 간단 스토리

주연배우 : 최민식, 한석규, 신구, 김홍파, 허준호

감독 : 허진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 불린 세종대왕과 노비 출신이지만 세종의 큰 뜻에 따라 대호군이 된 과학자 장영실은 20년간 꿈을 함께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뤘지만 세종이 타는 가마를 제작했던 장영실은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문책당하며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만들자 했던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태종이 발탁하고 세종이 아낀 희대의 과학자 장영실

장영실은 우리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동래현의 관노로 살았던 장영실은 물건 만드는 솜씨가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재주가 조정에까지 알려지고 태종이 전국의 인재를 발탁할 때 장영실이 발탁되었습니다. 그는 궁중기술자로 종사하였는데 철을 만드는 제련과 축성, 농기구, 무리 등의 수리에 뛰어났습니다. 

이어 1421년 세종 3년이 되었을 때 천문관 관리를 맡았던 윤사웅과, 최천구와 함께 중국에 파견되었습니다. 이들 3명은 세종이 조선만의 천문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발탁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세종은 당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중국의 천문시설을 시찰하고 와서 조선에서 재연해 주길 바랬습니다. 1422년 중국에서 돌아온 그는 세종이 곧바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교 질서를 엄격히 따졌던 신하들 반대가 극심하게 심했습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상의원 별좌에 임명했습니다. 노비 출신이 상의원까지 진급하게 된 건 유례가 없었던 일이었던 만큼 장영실은 세종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선만을 위해 만든 발명품

 

장영실의 발명품은 수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혼천의 -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는 장치입니다.

고려시대까지 당나라의 천문을 계속 받아 쓰고 있었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역법일 뿐만 아니라 약간의 별의 움직임에도 차이가 커지는 일월식 계산의 사정상 조선에서는 착오가 많이 생겼습니다. 하여 이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신기술이었던 명나라의 천문을 들여왔으나 여전히 위치 상 오차가 생겼습니다.

이에 세종 15년(1433)에 장영실이 우리나라의 하늘에 맞는 혼천의를 완성하였습니다. 

 

측우기 - 강우량, 즉 비가 얼마나 왔는지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측우기는 빗물을 받는 통으로 세계 최초로 국가단위로 표준화된 기상측정 기구였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역시 세종의 명을 받아 장영실이 제작에 참여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자격루 - 1434년(세종 16)에 제작된 것으로,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입니다. 영화 초반에 장영실이 제작하여 시현하는 장면도 나오는 만큼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입니다. 자격루의 제작에 성공으로 세종은 장영실에게 공로를 치하하고자 호군이라는 관직을 내렸고, 종3품 대호군의 지위에까지 올랐습니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에게 있어 정확한 시간은 필수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은 독보적인 표준시간이 없었기에 항상 오차가 발생하였고 이는 농사를 짓는 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때문에 세종은 독보적이고 조선에만 적용될 수 있는 표준시간을 만드는 것을 원하였고 2년간의 연구 끝에 장영실의 자격루가 완성되었습니다. 

 

앙부일구 - 1434년(세종 16년)에 만든 해시계입니다. 가마솥 같이 생겼다고 해서 앙부일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인 발명품 중 하나입니다.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 지신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장영실과 세종의 결별

 

이렇듯 세종이 너무나 아꼈던 장영실이 세종과 결별해야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은 '안여사건' 이라고도 불립니다. 1442년(세종 24)에 장영실은 임금이 탈 가마를 만드는 일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그 가마는 세종이 타기도 전에 부서져 버렸습니다.

사헌부에는 장영실을 비롯한 참여자들은 이들의 관직에서 파면시켜야 하며 곤장까지 맞아야  한다는 탄핵이 올라왔습니다.  이에 세종은 곤장 100대 형을 80대로 감해 준 것뿐 그를 더 이상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총애하던 장영실을 다른 때와 달리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명나라는 이러한 조선의 발명과 세종의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사상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기에 조선에게 외교문제를 들먹이며 발명품들을 모두 없앴것을 말했고 장영실 또한 명나라로 데리고 가려했습니다. 이에 세종이 장영실을 보호하기 위해 자국에서 형벌을 내린 것으로 결론 지었다는 견해가 있으며, 또 하나는 천문의 계획이 끝나버려 더 이상 장영실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주장 등 여러 견해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이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영화는 세종은 백성을 위해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천문을 구축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당시 사대주의에 빠져있던 신하들은 명나라의 눈치를 보고 명나라에게 반하는 행동을 하는 세종에게 오히려 반감을 표 합니다. 하지만 세종의 뜻을 함께 한 이가 바로 장영실입니다.

'안여사건' 이후 실록에서 사라진 장영실에 대한 업적을 역사적 배경을 업고 그 이후와 배경에 대한 상상력에 의해 각색한 이 영화는 세종과 장영실이 임금과 신하라는 신분적 한계를 넘어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조선이 되길 바라였고 조선의 과학 발전에 힘쓰는 내용을 그렸습니다. 

높은 평점과 2011년 드라마  '뿌리깊은나무' 이후 두 번째 세종대왕 역할을 맡은 한석규와 한국영화의 대들보 중 한 명인 최민식. 둘의 조화 만으로도 영화의 기대감을 높입니다. 신구, 김홍파, 허준호, 김태우 등 개성이 넘치는 연기 장인들도 출연하는 이 영화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조선의 과학자이고 기술자이면서 천문학자였고 세종의 오랜 벗이기도 했던 장영실에 대한 내용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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