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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병자호란 두번째 이야기-최종병기 활

by 역사는극치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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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종병기 활'은 2011년 개봉하여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 '명량'과 곧 개봉할 영화 '한산:용의 출현'의 감독이자 '봉오동전투'의 제작을 맡았던 김한민 감독의 작품으로 제 블로그에  2번이나 소개할 만큼 호평을 받는 작품을 많이 연출한 감독입니다. 제4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신인여자배우상, 영상기술상, 음향기술상을 받았고 같은 해 제32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신인여우상, 기술상, 한국영화 최다 관객상을 받으며 각종 국내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지난번 병자호란과 관련되어 소개해드렸던 '남한산성'은 신하들의 감정과 대사, 분위기가 영화를 이끌었다면 '최종병기 활'은 제목처럼 숨 막히고 화끈한 전투신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오늘은 병자호란의 이유와 그리고 결과, 그 이후 조선인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포스터
영화 '최종종기 활' 포스터

 

영화  정보

개요 : 액션 / 한국 / 122분

개봉 : 2011. 08. 10

평점 : 8.1 (다음) / 7.86 (네이버)

관객수 : 7,470,633 명

영화 간단 스토리

주연배우 : 박해일, 류승룡, 김무열, 문채원

감독 : 김한민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박해일)는 하나뿐인 동생 자인(문채원)의 행복을 바라며 혼인날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때 청나라 정예부대의 습격으로 자인과 신랑 서군(김무열)이 포로로 잡혀가고 맙니다.

남이는 아버지가 남겨준 활에 의지하며 동생을 구하기 위해 청나라 정예부대를 하나둘씩 처치하고 본거지에 접근하여 동생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하지만 청나라에도 명장 쥬신타(류승룡)가 있었고 왕자 도르곤과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남이를 추격합니다.  이 둘이 펼치는 활의 전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명나라를 섬기고 청(후금)을 배척한 조선

16세기 말에 일본의 침약으로 일어난 임진왜란에 우리 많은 선조들이 조선을 지켰지만 사실 명나라의 도움을 꽤나 받았기에 조선 사회는 명나라를 외교의 대상이 아닌 윤리와 도덕의 문제였습니다. 명나라와 후금이 1619년 전쟁을 하였을 때에 당시 조선의 군사력은 강하지 않았기에 명나라에게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파병을 지지하였고,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 정권이 들어선 이유 중 하나도 광해군이 명나라와의 관계를 소홀히 한다는 명분이었을 만큼 당시 우리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청(당시 후금)나라가 화친 제안을 했을 때에도 나라가 망할지 언정 명나라와의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론의 힘이 더 컸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후금과는 종묘맹약(형제지맹)만을 맺고 이렇게 명나라와의 대의를 지키고 있을 때 후금은 점점 영토를 넓혀가기 시작합니다. 많은 영토를 넓힌 만큼 많은 인구 또한 늘어나 심각한 식량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에 후금은 조선에 곡물 협조를 해달라고 사실상 간청을 하였고 어느 정도 조선은 그 간청에 응답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간청이 아닌 협박으로 변하고 있었고 여러 차례 민가를 침입해 약탈을 하면서 후금과 조선의 곡물 무역은 중단되게 됩니다.

그러자 후금은 대청으로 이름을 바꿔 더 이상 형제 관계가 아닌 군신의 관계를 수립할 것을 조선에게 요구했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조선을 침략하겠다는 협박을 합니다.  여기에 조정의 신하들은 갑을박론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 전에 포스팅한 '남한산성'의 배경입니다.

결국 조선은 청나라에게 침략당했고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삼전도의 굴욕 그 이후

조선은 개국 이래 이어오던 명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게 됩니다. 청나라는 조선에게 엄청남 세금과 하사품을 요구하였고 그 부담은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가중되었습니다. 

전쟁 이후였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으며 피폐한 삶은 계속 이어져갔습니다. 또한 수많은 포로들이 끌려갔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폐의 부담보다 조선인들에게 더 한 것은 바로 정신적인 충격이었습니다. 청나라 황실의 조상 몽케티무르는 태조 이성계의 부하였으며, 세종대왕 때 4군 6진을 이루어 후금이 조선을 넘보지도 못하게 할 만큼 자신들에게 조공을 해오던 오랑캐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역사와 반대가 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당했던 아픔을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통쾌한 액션 영화입니다.

신궁 하나로 청나라의 정예 부대에 맞서는 전투씬은 또 다른 쾌감을 선사합니다. 다른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활을 가지고 이처럼 다이내믹한 액션을 선보이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각 배우들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만주어까지 배우며 미세한 감정까지 소화한 연기력 또한 일품입니다. 

임진왜란보다 병자호란은 어떻게 보면 역사적 침략을 봤을 때 작은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임진왜란은 무려 7년을 싸웠으니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병자호란이 어떻게 발발하게 되었는지를 이 글을 통해 알게 된다면 이 또한 우리 역사의 아픔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통쾌한 액션으로 쾌감을 선사해줄 수 있는 영화 '최종병기 활'의 시대적 배경인 병자호란에 대해 이야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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