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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의열단의 수장이자 가장 높은 현상금의 주인공 김원봉-암살

by 역사는극치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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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김원봉은 누구일까요? 영화 '암살' 많은 신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이 바로 김원봉입니다. 암살의 주된 인물이기도 한 김원봉의 일대기와 그가 왜 찬반 논란에 휩싸였는지 영화 '암살'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암살' 은 타짜, 전우치, 도둑들의 연출을 맡은 최동훈 감독의 작품입니다. 201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한 해 제5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36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기술상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제52회 백상 예술대상에서 작품상을 받았을 만큼 뛰어난 작품성을 지니고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암살의 메인포스터
영화'암살' 포스터

영화 정보

개요 : 액션 / 한국 / 139분

개봉 : 2015. 07. 22

평점 : 8.5 (다음) / 9.1 (네이버)

관객수 : 12,706,855 명

간단 영화 스토리

주연배우 : 하정우, 전지현, 이정재, 조진웅, 오달수, 이경영, 최덕문, 박병은

감독  : 최동훈

때는 1933년 일제 치하에 조국이 살아진 시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 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의 상징 강인국을 암살하려 합니다. 암살을 위해 염석진(이정재)은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균(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을 찾아 이들을 모으게 되지만 거액의 의뢰를 받고 암살단을 쫓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뜻하지 않게 부딪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 중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반한 밀정이 있었고 이 밀정과 암살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암살단의 전투를 그린 영화입니다.

약산 김원봉 의열단을 조직하다

1898년 경상남도 밀양에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일제에 대한 저항심이 남달랐습니다. 그가 남달랐던 이유 중 하나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고 무력이 준비되어야만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만주에 이는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으며 독립항쟁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1919년 11월 김원봉은 신흥무관학교 출신 사람들과 뜻을 모아 만주에서 의열단을 만들었습니다. 김원봉을 비롯한 모든 단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독립에 힘을 보냈고 그들은 조선총독부, 경찰서 등 일제 신민 통치 기관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주요 인물과 경찰, 군인 등을 처단하였습니다. 

일제의 심장을 향한 의열단

여러 의열단의 활동이 있었지만 그중 손에 꼽히는 것은 종로 경찰서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일제 경찰은 김원봉에 가 가장 높은 현상금을 걸았다고 합니다. 

대규모 투쟁의 준비.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이 되다.

의열단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줬지만 그만큼 많은 의열단 단원들이 체포되고 희생당하였습니다. 이에 김원봉은 좀 더 대규모 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1926년 황푸군관학교에 들어가 군사 훈련을 받았고 조직적인 군사 훈련을 받아 의열단을 조선민족혁명당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1937년 중일전쟁 때 조선의용대를 만들어 중국의 편에 서서 일본에 맞서 싸웠습니다. 훗날 조선의용대는 한국광복군에 흡수되었고 김원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방부 장관의 역할과 한국광복군의 부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독립군이지만 이념이 달랐던 약산 김원봉

1945년 광복이 되었지만 김원봉은 김구와 함께 북한으로 가 김일성을 만나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해 협상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려는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김원봉은 북에 남게 됩니다. 이후 북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정치 활동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1958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렇기에 열렬한 독립 운동가였지만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한 인물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독립을 누구보다 원했다

영화 '암살'은 실제 일본 수장을 제거하기 위해 시도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상상력을 동원한 영화입니다.

김원봉 역을 맡은 조승우는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 쯤에 잠시 등장할 뿐 전체적인 주연배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대사에서 김원봉의 이름은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만큼 김원봉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정신적이고 또는 육체적으로도 많은 본보기가 되었던 인물인 것은 확실합니다. 해방 후 그가 북쪽으로 가 정치 활동을 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독립운동을 깎아내릴 수는 없습니다. 약산 김원봉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그의 일대기는 여기서 끝맺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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