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에서는 파독에 이은 베트남 파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실제 박정희 정부였던 1964년 9월 한국 병력을 미국과 연합군의 형식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동남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를 막기 위해 미국이 개입하게 된 이 전쟁의 원인과 한국이 베트남에 파병을 보내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발발. 미국은 왜 참전했을까?
베트남 전쟁은 1955년 ~ 197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과의 사이에 일어난 이념 전쟁입니다. 2차 대전 이후 벌어진 전쟁이었으며 이후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곳이 동남아시아에서 워낙 중요한 위치를 가졌기에 포기할 수 없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을 포기하면 동남아시아 전체가 사회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무장 병력의 지원
전투에 개입하게 된 미국은 전투 병력이 모자라자 한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 중 제2보병사단과 제7보병사단을 베트남으로 파병하려고 했습니다. 1960년대는 한국전쟁 휴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대였고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북한보다 더 못 사는 나라였기에 주한미군의 철수는 국가안보상 엄청난 위협이었습니다.
이에 미국이 승낙하였고 1964년 9월 의무대와 태권도 교관단으로 이뤄진 비무장 인원들이 파견되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의 더 많은 깃발 정책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은 베트남 중립화보다는 군사행동 강화를 해결책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1964년 4월 기자회견을 열고 동맹국들에게 베트남 전쟁 참여 요청하며 이른바 '더 많은 깃발 정책'(more flags campaign)을 표방했습니다. 이 정책은 단순한 병력 필요가 아니라 동맹국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지한다는 점을 다른 나라들에게 선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추진되었습니다. 한국도 동맹국 중 하나였고 이미 비전투병력을 파견하였지만 미국은 전투병력의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경제적 지원과 맞바꾼 파병인가? 정권을 인정받기 위한 파병인가?
우리나라가 파병을 결정한 이유에는 몇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먼저,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는 당시 많은 실업률들 계속적으로 갱신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실업률은 곧 경제 성장을 더디게 하는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베트남 파병을 지원하는 대신 미국에 많은 경제적 지원과 최첨단 군사 시설 등을 약속받습니다. 단순히 돈만을 요구한 것은 아닙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 조항을 넣어줄 것, 주한미군의 주둔군 지위 협정을 맺어줄 것, 주한미군 감축을 중지해줄 것 등의 미국에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부분을 더욱 과감하게 거래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없었는 미국은 적당한 선에서 조건을 마무리하고 원조를 더 보상해주는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또 다른 추측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 파병을 결정했다는 추측입니다.
파병은 결정되었고 실제로 파병된 군인이나 지원단들은 파독에서도 그랬듯이 모든 수당을 한국으로 송금하였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군인들의 송금은 국가적 이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결과물이 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한강의 기적은 이처럼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사관
2001년 베트남 쩐 득 르엉 국가 주석이 한국에 방한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공식 사과를 하고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였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하여 호찌민 묘소에 헌화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고 2009년 이명박 대통령도 호찌민 묘소를 참배한 뒤 양국은 더 이상 베트남 참전 등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기로 하는 의견을 교환하고 더 많은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자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지난번 국제시장의 흥남철수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엔 베트남 전쟁 파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60~70년대의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심지어 북한보다도 못 사는 나라였고 전쟁의 종결이 아닌 휴전이었기에 빠른 경제와 군사력의 성장이 정부가 이루자 했던 목표였습니다. 현재는 상상할 수 없는 값싼 노동력이라 평가받았기에 이런 타 나라에서의 삶. 혹은 타 국가 간의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나라만을 생각하며 그들의 피와 땀으로 얻은 값진 외화들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류 열풍의 중심지이기도 한 베트남,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들이 여행지로 많이 찾는 나라가 된 두 나라의 관계이지만 지난 과거에는 이러한 슬픈 사연이 있었음을 이 영화를 통해 기억하길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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