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시대극 영화 중 이준익 감독의 박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을 시작으로 여러 역사적 배경을 근간으로 한 영화를 많이 촬영한 감독입니다.
영화 '박열' 은 54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신인여자배우상, 의사상, 미술상을 받았고 38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 5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신인연기상 등을 수많은 수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일제 치하에 있었던 시대 독립군으로 활약한 박열. 하지만 다른 독립군들 보다 조금은 특별했던 박열.
오늘은 일본인 조차 부끄러워했던 과거 중 박열이 재판장에 들어가야만 했던 배경인 '관동대학살'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정보
개요 : 드라마 / 한국 / 129분
개봉 : 2017. .6. 28
평점 : 8.0 (다음) / 8.48 (네이버)
관객수 : 2,359,800 명
영화 간단 스토리
주연배우 : 이제훈, 최희서
감독 : 이준익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괴소문을 이유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일본은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화젯거리를 필요로 했고 항일운동을 하던 청년 박열(이제훈)이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됩니다. 하지만 박열은 억울함을 가지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영웅이 되기로 결심하고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와 역사적 재판을 시작합니다. 가장 위대한 피고인이었던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참혹했던 그날 '관동대학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9분 도교를 중심으로 관동 지역에 진도 7.9급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지진은 곧바로 대화재로 이어졌고 도쿄와 요코하마 지역을 비롯한 광동 지역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한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지진으로 사망자, 행방불명자가 약 14만명, 이재민이 34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이었습니다. 관동대지진으로 혼란에 빠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조선인들에 대한 루머를 퍼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았다' ,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등 근거 없는 낭설로 인해 조선인을 위협하였습니다.
이러한 유언비어를 처음 조작한 인물은 미즈노 렌타로 라는 일본 내무대신으로 조선인 학살의 주도한 인물입니다.
자연의 재해가 조선인의 탓이 되어가기 시작했고 일본인들은 죽창과 일본도, 총기까지 동원하여 자경단을 결성하였고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검문하였습니다.
조선의 옷을 입고 있으면 이유불문 살해하였고, 어린아이 든 여성이든 무차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선인들이 발음하지 못하거나 일본인들만 알만한 것을 시켜서 하지 못하거나 더듬거려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이 피해자 수는 독립신문 기록으로는 6,661명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정확한 피해자 수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도쿄에 흐르는 강이 조선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폭동 협의를 뒤집어 씌울 대상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됐고, 그곳에서는 박열과 후미코도 있었습니다. 박열은 물증도 없이 체포됐으나 이 사건을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으로 거짓된 역모를 인정합니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대학살은 아직도 일본 정부는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그 추도비를 일본의 아라카와 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택가에 만들어 놓은 일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추도비는 일본이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비석으로 반대 세력에 의해 훼손당 할 것을 우려해 사유지에 건립한 것입니다.
비석을 세운 단체의 이름은 '봉선화'입니다. 봉선화로 이름을 지은 이유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창가가 봉선화였는데 그런 봉선화에 빗대어 민족의 부활을 꿈꾸게 한 노래로 1940년 일본에 의해 가창금지령이 내려졌던 곡입니다.
자신들의 운동도 언젠가 꽃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영화 이야기를 끝맺으며
영화 박열은 관동대학살을 배경으로 그 주동자라는 누명을 쓰고도 당당히 일본 정부와 싸우는 박열과 그의 연인 후미코
그리고 그의 동지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의 당당함과 기발한 생각으로 일본을 당황시키기까지 합니다.
일본인이지만 자신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후미코는 어찌 보면 당시 친일을 하던 조선 사람들보다 훨씬 위대한 연인으로 보이며 박열 역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한 배우 이제훈과 최희서의 연기는 뇌리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열연을 보여 줍니다.
오늘은 영화 박열의 배경이 된 '관동대학살'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꼭 한 번은 감상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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