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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동양 역사 이야기

영화 <해어화>의 모티브가 된 1세대 디바 왕수복의 삶

by 역사는극치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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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인기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WSG 워너비의 노래가 날이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도 이와 같이 폭풍적인 인기를 얻은 디바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왕수복입니다. 영화 해어화는 왕수복의 삶을 모티브 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주연배우에 한효주와 천우희 그리고 유연석이 맡아 기대감을 모았지만 그리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닙니다. 오늘도 영화의 이야기 보단 모티브가 된 1세대 디바이자 1세대 연예인이었던 왕수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생학교 1기 이자 수석 졸업생

1917년에 왕수복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돌아가셨기에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학교도 못 다니고 어머니를 도와 남의 집 일을 하며 간신히 생활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체구가 좋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목청이 좋았던 그녀는 언니를 따라 돈을 벌기 위해 기생이 되기로 합니다. 

열세 살이 되던 해 평양 기성 권번이 운영하는 3년제 기생학교 1기생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사군자도 배워 그림 솜씨도 인정받았고 260명 중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이미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기생 출신 가수왕이 1세대 연예인이 되다

국내에는 레코드 플레이어인 유성기가 확산되고 있었는데 여러 유명 레코드 회사에서 그녀를 모셔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중 콜롬비아 레코드 사에서 처음 음반을 내었고 1932년 열여덞의 나이로 폴리돌 레코드 사의 전속 가수가 되었습니다. 이때 부른 노래가 그녀의 명곡인 <고도의 정한>입니다. 이 노래와 함께 그녀는 잡지사에서 조사한 조선 최고의 가수왕에 올랐는데 지금도 유명한 목포의 눈물을 부르신 이난영이 3위였으니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됩니다. 또한 전국적인 인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전국 공연을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방송 섭외뿐 아니라 광고까지 출연하면서 그녀는 1세대 연예인이 된 것입니다. 그녀의 앨범 판매는 120만 장으로 엄청난 기록을 세우기도 합니다. 

기생 출신의 가수왕이 탄생한 것입니다. 

 

시대가 은퇴시킨 것일까? 아니면 노래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왕수복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일본 땅에도 울려 퍼졌습니다. 1934년 1월 8일 경성방송국은 왕수복의 노래를 중계합니다. 왕수복은 오케스트라 반주로 고도의 정한 과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태어난 해는 일제강점기 시대였습니다. 일제는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이유였을까요. 어느 날 왕수복은 열아홉 살에 은퇴를 하며 일본으로 떠나버립니다. 폴리돌 레코드와도 결별하며 유행가 대신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유학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유학은 가지 못했지만 그녀는 일본에서 메조소프라노로 변신을 합니다. 

 

그녀의 남자들과 노천명

 

그녀의 첫 번째 남자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었습니다. 이효석은 왕수복을 만나기 전 부인과 딸이 있었지만 연달아서 두 명을 묻어야 했었고 절망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왕수복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 24세였고 이효석은 34살이었습니다. 왕수복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녔습니다. 문학에도 능통할 만큼 책 읽는 것을 좋아했었고 이효석의 소설에도 빠져있었기에 이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혼인 후 2년 만에 그가 수막염에 걸리고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녀 곁을 떠나게 됩니다. 

두 번째 남자인 김광진은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사실 노천명 시인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사슴을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고 표현한 우리가 아는 시인 노천명이 맞습니다. 김광진이 시대의 카사노바였을까요? 사실 그는 노천명과 결혼을 약속할 때에도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아내에게 노천명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요구하지만 아내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던 중 이효석을 잃고 쓸쓸해하던 왕수복을 만났고 이 둘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해방이 되었고 남북 전쟁으로 인해 그녀는 남편을 따라 그의 고양인 평양으로 월북을 합니다. 

 

끝맺으며

영화 <해어화>는 조선의 마지막 기생의 이야기로 조선의 마음을 당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과정에 배신과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노래라는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같은 노래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편곡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때론 듣는 청중에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OST라는 노래나 혹은 반주가 삽입되어 영상을 더욱 고조시키기도 합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가 울릴 때에도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왕수복은 비록 기생에서 출발하였지만 당시 식민지 사회에 있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희망과 같은 목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녀가 부른 아리랑은 조선이 식민지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아녔을까요? 오늘은 영화 <해어화>의 모티브가 되었고 조선의 디바이자 1세대 연예인인 왕수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영화 정보

개요 : 드라마 / 한국 / 120분

개봉 : 2016. 04.13

평점 : 8.23

관객수 : 48만 명

주연배우 :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 박성웅

감독 : 박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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