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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보는 서양 역사 이야기

영화<뮌헨: 전쟁의 문턱에서>로 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이유

by 역사는극치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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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1일 넷플릭스에서 영화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가 스트리밍 되었습니다. 영화 1917의 주연배우인 조지 맥케이와 크리스천 슈뵈초브 감독이 손을 잡았습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뮌헨 협정에 초점을 두며 스토리를 이끌어 갑니다.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을 기반한 픽션의 이야기입니다. 전쟁 영화이지만 전쟁이라는 액션보다는 치밀한 스파이 작전이 긴 러닝타임을 이끌어 가지만 지루함이 없는 영화입니다. 오늘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뮌헨 협장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 이야기

나치 독일과 체코(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는 1918년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한 나라입니다. 지리적, 언어적으로 보았을 때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독일어를 사용하였고 체크슬로바키아 역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독일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나치 독일이 등장하고 총통인 히틀러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독일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38년 3월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이러한 이유로 강제 합병합니다. 히틀러의 다음 목표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위치하고 있는 주데텐란트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독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부의 강국인 프랑스와 러시아에게 군사적, 정치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영국과도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히틀러가 무리하게 주데텐란트를 병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계속하여 통합되어야 한다며 선동하였습니다.

영국의 사정과  네빌 체임벌린

유럽의 열강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영국은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를 처참히 깨달았으며 때마침 1930년 세계 대공황이 닥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일었습니다. 또한 각각의 나라들과 맺은 동맹으로 인해 전쟁에 참여했을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온다는 것도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군이 군사력으로 독일보다 훨씬 더 강하였지만 히틀러의 과장된 독일의 군사력 부풀리기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경책으로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부적으로도 반발 심할 것이라는 생각에 당시 영국의 총리인 네임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만나 적극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그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만나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말고 주데텐란트 주민들의 국민 투표 결과를 인정하도록 설득합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이 제안을 거부합니다. 동시에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총동원령을 내렸고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대비합니다. 그러자 체임벌린은 전쟁만은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의 4개국이 모여 회의를 개최하기로 제안합니다. 

뮌헨 협정

이렇게 체코슬로바키아가 빠진 채 4강 회의는 개최되었습니다. 독일이 전쟁 없이 주데텐란트를 합병할 수 있게 사인을 해주게 된 것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협정으로 인하여 국토의 30%를 잃었으며, 500만 명의 인구를 잃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막았다고 생각한 체임벌린은 자신의 나라인 영국으로 돌아와 평화를 지켜냈다고 연설하였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패를 기억하고 있었던 독일이지만 자신보다 높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나라들이 자신의 요구를 다 받아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독일 국민들이 전쟁 없이 영토를 통합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감이 넘쳐나기 시작하였고 1년 뒤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뮌헨 협정은 오늘날 최악의 협정으로 역사는 다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만류

뮌헨 협정에 대해 많은 서구의 정치가들은 체임벌린에게 서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런 요구의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첫 번째는 독일은 히틀러가 소문을 내고 있는 것보다 훨씬 군사력이 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독일 내부에서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광이라고 불리던 그를 탐탁지 않아하던 내부 군부세력들이 있었고 출정 신호가 떨어지면 히틀러를 제거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 당시 많은 군사적 요충지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무기를 배치하고 있어 독일보다 훨씬 군사력이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들며 체임벌린을 설득하려 하였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회유책을 믿고 서명을 하였으며 전쟁 이후 총리직에서 파면되고 윈스턴 처칠이 다음 영국 총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역사가 주는 이야기와 느낀 점

역사와 과거에 만약에라는 말은 없습니다. 과거가 끝나고 오늘날에 다시 보았을 때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잘한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뮌헨 협정 역시 지금에 와서야 얼마나 잘못된 사건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결과로 되돌아 후회했을 땐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리더의 선택이 얼마나 큰 영향력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선택의 기로에 서있고 최고의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최선의 판단보다는 최악의 판단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영화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의 배경이 된 뮌헨 협정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이 포스팅을 먼저 보신다면 좀 더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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